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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처럼 되기
    2018/12/05 18:5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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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신처럼 돼봤으면...’하는 상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신이 되면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고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신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신의 아들에 대한 해석을 보게 됐는데, ’공기업에 취업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답을 한다. 호기심과 기대를 받았던 에 대한 관심이 지금은 그저 현실상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씁쓸한 가슴을 안고 성경을 들여다보니 사람이 신이 된다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 있는데 그중에 아주 상반되는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으로 표현된 사탄이 하와에게 신이 되라고 꼬드기는데 아주 묘한 논리를 편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니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여 말씀을 따르지 않음으로써하나님처럼 되라고 유혹한다.
    반면, 하나님이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님은 아버지(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처럼 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라는 핫한 정보를 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10:35)>
     
    사탄은 하나님이 원치 않으니 그 말을 거부하여 하나님처럼 되라고 하고, 구원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이니 그가 주시는 말씀을 듣고 따라 행하여 하나님처럼 되라고 한다.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부정하라는 사탄의 말에서 논리적 모순이 보인다. 그런데도 하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탄의 말을 따랐던 것일까? 이유는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제대로 몰라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할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게 가능해? 인간이 감히 하나님처럼 되려고 해? 불경스러운 것 아니야? 나약한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어!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피조물!”한다. 이 반응은 겸손이 아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못 알고 있어서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개 사람들이 신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에는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초월적인 능력이 들어있다. 하와가 생각했던 하나님처럼 되기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기에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서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시하는 하나님처럼 되기는 그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 천보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처럼 돼요. 인격이 하나님처럼, 사랑이 하나님처럼, 지혜와 지식이 행동과 능력과 권세가 하나님처럼 돼요.”라고 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는 파워맨이 아니라 오히려 참고 덮고 이해하고 품는 사랑의 권세를 발휘하는 하나님의 본성을 닮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된 사람 1호는 예수님이다. 그런데 당시 많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되기를 싫어했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본성을 따라 신처럼 되고 싶기는 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하나님처럼 되는 것에 대한 다른 기대 때문이다. 하나님을 닮아서 그 아들이 된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초자연적 능력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표적을 구하는 자들은 악하고 음란한 자라고 쏘아붙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12:39)>
     
    이 말을 들으면 생각하기를, ‘그것 봐.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잖아, 사람이 물고기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나오는 것이 얼마나 큰 표적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을 하신 앞 뒤 정황을 볼 때 예수님이 강조하고 싶었던 표적은 그 다음에 언급하시는 니느웨 성 사람들 12만 명이 회개함으로 심판을 피했다는 사건이다. 꼭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회개함으로 삶을 얻었다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이 목청 높여 외치고 싶은 사연이다.
    그들과 같이 지금 너희들도 내가 함께 있을 때 회개하고 심판을 피하라! 그 표적이 너희 눈앞에 있는데 욕심과 무지로 생명의 기회를 놓치고 있구나... ”
     
    이렇게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자기인식을 따라 전혀 다르게 이해하듯이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도 각자 다르게 이해한다. 대개 하나님이 보낸 자는 일반적인 사람과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거룩하고 신비로우며 권위적이며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른 형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신의 모습이어야 하니까.’한다. 맞다. 그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거룩한 형상이나 권위적인 태도로 다른 것이 아니고 그 생각과 행함과 사랑의 크기가 다르다.
     
    가룟인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이유는 애초부터 배신하도록 그 역할이 정해졌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그가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델은 모세였다. 이집트에서 자기 백성을 이끌어낸 강력한 지도자.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이집트의 바로에게 대항하여 능력과 기적을 베풀며 자기 민족을 이끌어내던 파워가 넘치는 지도자 곧, ‘하와가 기대했던 하나님처럼 된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거지나 창녀나 세리들과 어울려 다녔으며 제자들의 끼니조차 해결해주지 못했고 민족의 숙원인 해방과 독립이라는 거창한 테마를 외치기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나약해 보이는 메시지를 전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회개해서 변화되라는 지극히 소소해 보이는 가르침을 주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기에 하나님이 기대하는 하나님처럼 된그를 유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기적은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써 일어난다는 기본을 몰랐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권세는 사랑이다. 사랑은 이념이나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다. 작든지 크든지 약하든지 강하든지 자기 시간을 내어주며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 그것이 최고의 기적이다. 주는 남다른 큰 도를 가르쳐주기 위해 오신 것은 맞으나 그 중에 가장 큰 도는 그가 하나님의 몸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우리들과 어울린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 오햇살 ohaessal0@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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