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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앙이란 무엇일까?
2018/11/16 15:5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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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없다. 키(key)는 하나님이 보내신 시대 사명자에게 있다.
신앙이란 뭘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일까? 그가 나를 사랑하고 도와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까? 그의 존엄함을 칭송하는 것일까? 그 모든 것들이 포함되겠지만 주님은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며 살아가는 것’을 신앙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바로 옆에 실체로(육신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그렇게 대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로 옆에 실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일까? 그를 의식하면서 옆에 빈 의자를 하나 더 갖다놓거나 식사 때 밥그릇 하나 더 올려놓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제대로 깨닫고 인정하는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냥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과 어떻게 도와준 것을 알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감사하는 것은 수혜자가 느끼는 고마움의 차이가 다름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우리를 돕거나 사랑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지으신 자연만물을 사용하시는 경우도 있고 감동을 주어 스스로 깨닫고 행하도록 하시는 것도 있으며 다른 사람을 통해서 도우시는 때도 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직접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도우시는 경우는 ‘절대 없지만’ 그 대신 사람을 통해서 가장 핵심적인 일을 행하신다.

개인적인 일들이야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을 통해 하시지만 한 민족이나 온 인류에 해당하는 큰일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그 몸으로 사용하시는 사람을 통하신다. 몸으로 쓰인 그들이 작게는 선지자요 크게는 메시아였다. 특히나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자는 그 쓰임의 차원이 절대 다르다.

예수님은 시대의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 차원으로 구원해놓은 분으로서 당신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아들의 위치에 섰다. 그럼으로써 아들의 권세를 발휘할 수 있었는데 그 능력은 참으로 컸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막 4:41)>

비단 풍랑을 잠잠케 하여 위기에서 구해준 일 외에도 그 시대 사람들에게 행한 능력은 참으로 많다. 또한 예수님이 행하지 않았더라도 구세주를 보낸 하나님이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은혜에 은혜를 더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받은 큰 은혜와 혜택이 예수님으로 인해 오게 된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기적과 같은 은혜를 받았는지 조차 모르기도 했거니와 알았다 하더라도 의례 ‘하나님이 주신 것이려니...’ 했을 뿐 구체적으로 누가 간구했으며 하나님이 돌아보시도록 어떻게 조건을 세웠으며 그 큰 은혜 뒤에 어떤 감사와 영광으로 화답하였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 그들의 무지 혹은 무관심은 자기들을 살리러 온 구세주를 외면함을 넘어서 자기들 손으로 살해하는 무참한 결과를 빚어내고 말았다. 하나님을 칭송하며 경외하였겠으나 어떻게 사랑해주셨는지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무지는 실상 ‘사랑이 없음’이다.

보낸 자의 권세! 바울은 보낸 자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표현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땅에서는 그가 모든 운명을 좌우하는 하나님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그가 온 인류를 대표하는 사랑의 대상이므로 그는 ‘온 인류’이다. 그러나 보낸 자의 권세는 힘의 세기로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라도 들어주시는 그 위치에 서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인생들을 위해서 대신 기도하고 대신 희생하며 대신 간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것이 그가 가진 권세의 진정한 가치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마 26:53-54)>

오늘날은 2천 년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 더 많은 사건들이 넘쳐난다. 아마도 수만 배 이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와 정치적인 면에서도 나라마다 첨예한 갈등이 수시로 발생한다. 최첨단 무기가 과도하게 개발되어 어느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인류 전체가 멸망해버릴 위험도 안고 있다. 특히 한반도는 정치 군사적 갈등의 최첨단에 서있다. 그런데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반도는 핵미사일을 비껴갔다.

실제로 1994년 김일성 생존 당시 북한의 박영수가 한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을 때 우리 모두는 마음 졸이며 뉴스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뜻밖에 발생한 김일성의 사망으로 한반도는 잠정적 평화로 되돌아섰다. 김일성의 사망은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던 사건이다. 어떻게 바로 그 순간 그 타이밍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연일 수 있는 것일까? 키(key)는 하나님이 보내신 시대 사명자에게 있다.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는 아주 미세한 계산 차이로 완전히 다른 기상변화 예측 결과가 나온 것을 경험하며 아주 작은 일이 동기가 되어 큰 사건을 발생시킨다는 의미의 ‘나비효과’論을 이끌어냈다. 모든 일에 우연은 없다! 발생한 사건의 첫 동기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채지 못할 뿐이지 결코 무슨 일에든 그 원인은 있다. 그것을 쥔 자가 핵심자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혼자 결행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그 시대에 보낸 자와 함께 행하신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보낸 자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보낸 자의 의견을 따라 당신의 뜻을 돌이키시기도 한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고 거칠 것이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지만 땅에 보낸 사명자의 의견을 그토록 존중하신다. 이유는 그가 땅의 중심(혹은 핵심)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하나님이 보내신 중심자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육신이며 또한 사랑의 뜻을 이루는 세계에서 하나님의 상대체로서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상대체란 때로는 일체된 분신보다 더 귀한 존재일 수 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자신이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흥분되고 기대되고 좋은 것은 사랑하는 상대가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그토록 하나님은 온전한 사랑의 상대체가 서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지금은 이 시대 사명자가 하나님의 상대체, 그 위치에서 땅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핵심적인 키(key)를 쥐고 권세와 능력을 행하고 있는 시대다. 그 권세와 능력의 혜택을 누릴 수 있으려면 그 은혜와 혜택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가치를 깨달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해야 할 신앙의 모습이다.

[ 오햇살 ohaessal0@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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